본문 바로가기

여러가지 이야기/운동 선수 이야기

이종범

반응형

정후 아빠. 한국이 낳은 야구천재. 최고의 Five Tool Player. 이종범이라고 쓰고 신이라 읽는다.

이종범을 소개하는 말은 위와 같이 많다. 나에게 이종범은 정말 특별한 선수다. 어렸을 때 광주 무등경기장에 야구를 보러 갔었는데 그때 이종범이 30, 30 클럽을클럽을 달성했던 날이다. 1번 타자가 무슨 홈런을 그렇게 잘 치는지 모르겠지만 이 시즌에 이종범은 이승엽과 홈런왕 경쟁까지 했다.

이종범


또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종범은 경기 중 갑자기 포수를 한 적이 있다. 원래 유격수가 그의 자리인데 갑자기 일이 생겨서 포수를 한 것이다. 그리고 그날 그는 처음 포수를 한 그날 도루를 시도한 주자를 송구로 잡아냈다. 내가 글을 쓰면서도 이것이 말이 되는지 모르겠다. 처음 하는 포지션이면 분명히 어색한데 도루까지 저지시켰으니.

하긴 어떻게 보면 도루를 막은 것도 당연해 보인다. 그는 수비 능력조차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수비하면 그냥 안타라고 되는 것도 이종범은 그것을 막거나 아니면 본인의 실책으로 기록되게 만들었다. 즉 활동 반경이 너무 넓고 수비도 잘해서 이미 일반 야구 선수와는 다른 수준을 보여준 것이다. 도루는 한해 70~80개 정도 성공했으니 따로 이야기할 것도 없다.

위와 같이 엄청난 야구를 한 이종범 선수는 일본에서도 처음에 승승장구하다가 팔꿈치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해 부진에 들어간다. 그는 이 부상으로 송구 거리마저 짧아졌다고 한다. 원래 그의 송구거리는 70~80m인데 이 부상 후 40~50m로 줄어들었고 몸에 붙는 공에 대한 공포심도 생겼다고 한다. 사람의 몸 어디나 그렇지만 한 곳을 크게 다치면 상당한 후유증이 생기게 된다. 통증은 기본이고 심리적인 불안상태도 생긴다. 이종범 역시 그랬다.
[이 포스팅을 보는 분들 중 어떤 부분이던 계속된 통증과 불편함을 느끼시는 분들이 있다면 빨리 MRI 검사를 받기를 권한다.]

아무튼 그런 일본야구 생활을 마치고 그는 한국에 돌아와 다시 야구를 하고 1번 우승 후 선수생활을 마무리했다.물론 선수 생활을 마무리, 즉 은퇴과정이 매끄럽지 못해서 정말 난 실망했고 기아 타이거즈 야구를 더 이상 시청하지 않는다. 나에게 이종범은 그렇게 대단한 선수였기 때문이다. 그런 이종범이 오랜만에 TV에 얼굴을 보인다고 한다. 아들 이정후와 함께 말이다. TV 시청을 잘하지 않지만 이 프로그램은 한번 챙겨보고 싶다.

나의 영원한야구 신 이종범. 그분의 성공적인 지도자 생활을 기도한다.

반응형

'여러가지 이야기 > 운동 선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양준혁  (0) 2021.12.10
메이저리그 출신 푸이그  (0) 2021.12.10
솔샤르 경질  (0) 2021.11.21
추신수인성과 기부  (0) 2021.11.08
메시 이적  (2) 2021.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