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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이야기/패션 이야기

샤넬 창립자 가브리엘 보뇌르 샤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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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 창립자 가브리엘 보뇌르 샤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 오늘날 샤넬 로고

여자를 설레게 하고 샤넬 지갑 샤넬 가방 샤넬 핸드백은 여자를 홀리게 한다.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 샤넬은 여자들의 선망이자 로망인 명품이 되었다.

 

[물론 샤넬 향수 샤넬 립스틱 샤넬 핸드크림과 같은 샤넬 화장품도 많이 팔리는

제품이다. 특히 샤넬 향수 샤넬 No5는 전 세계적 메가 히트 상품이다.]

 

그 시작은 코코샤넬로 불리는 창립자 가브리엘 보뇌르 샤넬로부터 시작되었다.

최근에는 샤넬 가방이 샤넬 아이템 중 가장 선호받지만 처음에는 가브리엘 샤넬이

만든 샤넬 여성의류가 가장 인기가 많은 아이템이었다. 

 

그녀는 당시 여성들에게 불편함을 줬던 코르셋 복장과 긴 의류들이 판을 치던 패션시장에

전혀 다른 여성의류를 내놓았다. 길이가 너무 길어 땅에 끌리는 치마를 발목 위 까지 오게

만들어 편리성을 더했고 핸드백도 어깨에 메고 다닐 수 있게 만들었다.

 

그녀가 만든 이런 핸드백 콘셉트로 인해 여자들의 손이 자유로워졌다. 그전까지 여자들의

핸드백은 들고 다니는 스타일로만 제작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깨에 메고 다니게 제작 못한 걸 보면 그 당시 사람들이 참 아둔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천만의 말씀. 뭐든 보고 나면 쉬워 보이고 남들이 하니까 간단해 보인 것이다. 마치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말이다.

 

또한 가브리엘 샤넬은 검은색으로 된 의류 제작을 시도했다. 오늘날 블랙은 남녀를 통틀어 굉장히

인기 있는 필수 아이템 색상이 되었지만 코코샤넬이 이 의류를 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블랙은

남자의 색상 혹은 죽음의 색상으로 여겨져 여자들이 가까이하지 못했다.

 

그런 시대의 분위기를 깬 것을 보면 코코샤넬은 참으로 대단한 여성이고 진취적인 여성이고

추앙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런 그녀는 프랑스에 묻히지 못했다. 가브리엘 샤넬을 업적만 보면

이해하기 힘들 수 있다.

[ 혹시나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봐 하는 말인데 가브리엘 샤넬은 프랑스 출신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그녀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장교와 교제를 했고 코코샤넬이 나치에

협력했다는 설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4년 프랑스 공영방송에서 가브리엘 샤넬이

나치 스파이로 활동했다는 문서가 나왔다고 방송하기도 했다.

 

아시겠지만 프랑스는 고국을 배신한 사람들에게 굉장히 혹독한 형벌을 주는 국가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그녀가 자신의 국가에 묻히지 못하는 게 이해도 된다.

 

[참고로 그녀는 스위스에 묻혔다.]

 

이걸 보면 가브리엘 샤넬 생애는 화려한 것 같으면서도 끝맺음은 좋지 못한 거 같다. 물론 그녀는

그런 것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뭐 이미 한참 지나간 일이고 우리나라 일이 아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가브리엘 샤넬 명언을 적으면서 이 포스팅을 마친다.

 

"패션은 변하지만 스타일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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